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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인류는 ‘도구’의 사용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징 중 하나로 꼽는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란 이름이 그것이다. 물론 일부 유인원들도 도구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먹이를 보다 쉽게 구하는 정도로 쓰이고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어도 그 이상의 발전이 거의 없으니 인류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수준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인류가 직립하며 그에 따라 자유를 얻은 두 팔, 그리고 도구의 사용은 연속적이며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현재 인류는 막대기 정도에서 시작한 시절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도 새로 만들고 있다 . 전문적인 도구는 물론 일상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도구들도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각종 편리를 제공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1.
사사로운 에피소드 하나.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름 ‘ 시내’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다소 ‘시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낯선 교실에서 또 그만큼 낯선 반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은 ‘시내에서 전학 온 공부 잘하는’ 아이라며 나를 소개했고 교단에 선 동물원 원숭이 신세인 나는 어색한 눈빛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고 ‘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아라’는 담임의 말을 따라 내 책상을 찾아갔다. 마치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모양이 된 나는 우쭐하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낯선 상황들은 어린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매우 큰 스트레스였다. 수업은 시작됐고 나는 교과서와 공책, 그리고 샤프를 꺼냈다. 그런데 그 샤프가 문제였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나의 샤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고작 샤프에!’ 이유는 간명했다. 전학 온 새 학교에선 어떤 이유에선가 아이들의 필기도구는 오로지 연필이라고 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도 샤프는 팔지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 나의 샤프는 ‘흔들 샤프’였다. 샤프심이 닳으면 뒷꼭지를 누르는 게 아니라 샤프를 쥔 그대로 위아래 흔들기만 하면 ‘샥샥’ 이라는 얇은 소리가 나며 스프링의 힘으로 샤프심이 조금 더 나오는 , 전학을 오기 전엔 반 아이들 거의 모두가 사용하던 것이었지만 연필만 사용하는 새 학교에선 ‘초 레어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의 작은 소동 이후 담임은 나에게 여기에선 연필만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고 그 샤프는 집에서만 쓰는 물건이 되었지만, 나는 ‘시내에서 전학 온 공부 잘하는 아이’에서 순식간에 ‘흔들 샤프를 쓰는 아이’가 되었다.
샤프는 연필을 대체할 수 있는 도구이며, ‘흔들 샤프’는 상하로 흔들면 샤프심이 조금 더 나오는 새로운 기능으로 편리와 재미를 주는 도구다. 도구가 사람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말이다 . 그리고 비록 다른 학교 아이들은 모두 가진 것이었지만 전혀 다른 공간이었던 그 학교에서 만큼은 그 샤프가 나를 규정지었다 . 도구가 사람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가까이 있고 단순한 도구가 그럴지언정 복잡하고 전문적인 도구들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편리함과 지적 호기심의 충족 정도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발전된 형태의 도구들은 보다 적극적이며 본질적으로 개인을 규정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2.
이런 구도를 한 번 더 확장하여 본격적으로 살펴보면 많은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들이 도구, 기계에 둘러싸인 미래의 인류에 대해 어두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점도 앞에서 언급한 도구에 의한 인간 규정과 그로인한 인간 정체성의 과제로 한 발자국 더 딛는 까닭일 터이다. 이젠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1982 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브레이드 러너 >에서 로이의 마지막 대사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은 그가 복제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도구가 진짜 인간보다 ‘인간스럽기 ’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다.
구분해야 하는 것은 ‘기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도구(외피, 형식)가 인간 (본질, 내용) 보다 우위에 설 수 있으니 두렵지 않은가?’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들을 만들고 사용하고 있다. 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새롭고도 유용한 지식을 촉발할 것이다. 사람 사이의 새로운 교류, 소통 방식으로 보다 활기찬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아바타>가 놀라운 흥행 기록을 세운 이유는 그 서사의 새로움이나 동을 끌어오는 배우들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이 원인이기보다 3D 컴퓨터그래픽 기술이라는 도구의 힘이 크게 작동한 결과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형편없는 영화라는 게 아니라 그래서 훌륭한 영화라는 말이다.
나를 찾는다고 나 이외의 것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나와 세계와의 관계망을 점검하는 게 나를 찾는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다. 도구 때문에 인간 본래의 순수한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이분법적인 오류다. 그 섞임과 혼돈 사이에 본질이 있고 미래도 있다. <터미네이터> 처럼 기계들과 인간이 서로 갈라져 죽이고 죽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
3.
몇 일 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에서 주재한 국가 회의에서 어느 주지사가 트위터를 하다가 딱 걸렸다. 회의 석상에서 바로 대통령이 “니키타 벨리크가 저기 앉아 국가회의도중인데도 트위터에 글을 쓰고 있다. 더 나은 할 일이 없어 보인다”며 따끔하게 경고를 했다. 후에 주지사는 어떻게 됐으며 트위터에 대한 대통령의 엄단이 있었을까? 회의가 끝난 후에 두 사람은 트윗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일상의 평정을 찾았다. 간단했다. 드미트리 대통령의 경고는 회의 중에 트위터에 글을 작성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일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계정 개설 첫날 팔로워 9만 명을 돌파한 파워 트위트리안인 드미트리 대통령은 무엇보다 새로운 소셜미디어가 일상에 어떻게, 얼마나 침투해 있는가를 알고 그 침투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 2010년 가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