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0.
아이돌, 연예계를 주름잡는 그들에겐 거칠 것이 없다.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을 넘어 드라마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다. 교복
광고에 그치던 그들이 거의 모든 상품의 CF 모델을 접수한 지는 오래전
일이다. TV에서 뛰쳐나와 뮤지컬 무대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며,
각종 게임 속 캐릭터로 변신하여 같이 농구도 하고, 총도 쏜다. 핸드폰과
블로그에선 그들의 손글씨체를 만날 수 있다. 음반, 음원 판매 순위는 물론이고
검색어 순위에도 늘 상위에 오른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그들의 활동에 대한 일반인들의
리뷰들이 연일 수도 없이 쌓인다. 그들은 대중문화의 중심이고, 미디어와 IT의 전방위적
콘텐츠다.
그들의 노래와 춤은 최고다. 원더걸스의 ‘텔미, 텔미’든 소녀시대의 ‘오빠, 오빠’든 나의 입과 귀를 맴도는 후크송도 좋고, 브아걸의 시건방춤이든 카라의 엉덩이춤이든 이른바 포인트 댄스도 따라하고 싶다. 초콜릿 복근과 꿀벅지는 아저씨의 마음도 설레게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고래가 진작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봤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대가 아닌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이는 그들의 솔직한 모습도 보기 좋다. 노력했지만 여전히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고 멤버의 수도 잘 모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인 조카가 노래방에서 열심히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다.
1.
본래 아이돌(idol)은 우상(優像)을 의미하는 영어라지만 저 유명한 링컨의 말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가수들을 가리킨다. 아, 물론 나를 포함한
삼촌, 이모들에 이르는 폭 넓은 연령의 팬을 확보한 이른바 ‘국민 아이돌’도
적지 않고, 이른바 ‘성인돌’이라고 불리는 어른 멤버로 구성된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인
특징들을 모아본다면 앞의 표현이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여기에 조건을 하나 더
붙이자면, 그들은 대형 기획사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노래와 춤, 연기력과
개인기, 얼굴과 몸매 또는 근육 등을 양성 받거나 만드는 ‘연습생’ 시절을
겪은 후 등장한다. 숨 막히도록 혹독한 연습생 시절은 있지만 예전 가수들이
얘기하는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서러운 무명 시절은 없는 셈이다.
알기 쉽게 조금 과장하여 얘기하면 혼자 힘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기타 하나들고 고군분투하는 방법은 아주 오래 전 시대의 유물이며 무엇이
대중의 요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기획사가 그에 맞는 가수와 노래를 준비하여
멋지게 대중 앞에 등장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뿐이라는 점 말이다.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아이돌에 대해 말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이 지점도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이유도 그 주인공이 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이고 단순히 노래들 듣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 그들이 곧장 온갖
미디어와 IT의 전방위적 콘텐츠로 작동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어느 누구와
집단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생각되지 않는다.
2.
아이돌 가수와 그들의 노래는 높은 수준의 음악성 보다는 매우 높은 상품성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가창력을 기본으로 한 미적 완성도만이 가수에게 기대하는 콘텐츠가 아니고 노래를 포함한 공연 자체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사람들이 즐기기 때문이다. 가창력이 좀 부족한 사람과 댄스 실력이 좀 부족한 사람, 또 악기 연주나 외국어 능력, 개인기나 외모, 의사소통 능력 등이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그룹’을 이루어 서로 도와서 하나의 완성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셈이다. 거꾸로 보면 서로의 장점을 모아 단점을 극복하는 방식이니 참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음악성에 방점을 찍는 가수와 팬들에게는 서 있을 공간과 시간이 없다. 음악이 유통될 수 있는 거의 모든 통로가 오로지 시장에서의 가치가 높은 아이돌에만 집중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대중음악계에 다양성과 개성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앞말에 이어진다. 같은 장르의 엇비슷한 노래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바로바로 소비되는 방법은
일회성과 즉시성을 갖는다. 가수들의 퍼포먼스(노래를 포함한)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주어지지도 않는다. 좋은 노래를 짧은 시간에 빨리 소비해버리는
일은 어쩌면 낭비일 수도 있다. 또 아이돌의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찾는 순간 마니아 취향을 가진 소수자 집단에 속하게 되니 뭔가 어그러진
것은 분명하다. 오락과 유희의 종류와 방법이 대단히 좁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하나더, ‘섹시하다’는 말을 일상에서 만나는 이성에게 함부로 말하기는
여전히 어려운데, 아이돌 가수들에게 섹시하다고 말하고, 초콜릿 복근을 보여 달라고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그들의 선정성도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가사,
의상, 안무, 무대장치 등에서 보이는 선정성은 ‘야하다’를 넘어서는 경우가 빈번하다. 성은
건강한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낼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수위의 조절도 필요하겠지만 경쟁하듯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하는 경향도
그리 달갑지 않다. 표피적인 즐거움을 주는 방법으로써 너무 쉽게 성이 이용된다면
더욱 그렇다. 청소년을 주된 소비 계층으로 삼는다면 더욱 그렇다. 성은 건강하지만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니 때문이다.
3.
이렇게
염려의 대상이 된 대중음악계의 가장 큰 힘은 대형 기획사가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기획’된 가수와 노래에 의해 큰 판이 움직인다. 그 영향력은
음악을 넘어 대중문화 전부에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충분히
요구받아야 할 것이다. 가장 걱정스런 점은 아이돌 음악을 즐기고 있는 대중들이
단면화 되는 경향이다. 인간은 매우 다양한 음악과 즐길거리를 통해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감수성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고 그로인해 보다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오락, 유희란 게 그런 필요의 수단이 아니겠는가? 좁디 좁은
바탕과 편식에 따른 영양 부족은 심히 걱정된다.
또
그것은 굳이 저명한 대중문화 연구가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대중의 단순화, 현실에의
망각과 무관심의 확장이라는 더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자극적이고 일회적인 유희만을 제공한다면 그들이 주인공일 미래 역시
현재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소녀시대를 따라 소원을 수없이 말해봐야
상상 속에서의 일일 뿐이다. 화려함 뒤의 몽매함이라면 반갑지 않다.
4.
최근 인디밴드 와이낫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표절의 유무를 따지고,
그들의 노래인 파랑새를 1위로 만드는 운동을 하는 등의 활동은 특정인이나 집단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형 기획사를 향한 인디를 포함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로 해석된다.
큰 판으로 보면 우리의 대중문화가 대형 기획사, 유명 작곡가, 훈련된 아이돌에
의한 시각적이고 표피적이며 일회성 오락거리로만 가득하다면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유희가
너무나 단순화되고 제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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